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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6.04.0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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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고암경제교육연구소장

 

지난 믿음의 선진들이 흙벽돌 한 장씩 쌓아 올린 헌신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드려진 수고 위에 사도행전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에벤에셀의 우리 교회는 올해 창립 124주년을 맞이한다.

 

농촌 시골교회인 우리 교회에는 일찍이 미국 선교사가 한 믿음의 가정을 방문해 학습세례를 베풀었다는 귀한 기록이 남아 있다. 1902년 바레트 선교사를 주일 가정에 초청해 예배를 드린 뒤 지내교회 최초 학습세례교인 ‘홍재삼’의 이름이 「미국 북 장로교 한국선교회사」에 안동지역 최초 학습세례교인으로 기록돼 있다.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초기 선교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생각할 때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교회와 병원, 학교를 세워 오늘의 한국교회와 사회를 일구는 밀알이 되었다.

 

문득 조선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한 브뤼기에르 주교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는 조선으로 오던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조선 사람들의 풍습을 익히기 위해 생활 습관까지 몸에 익혔다고 한다. 그가 남긴 기도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영원히 여기 머물 것처럼 일하고, 내일 떠날 것처럼 준비하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6·25전쟁 등으로 인해 기록이 제대로 보존되지 못해 아직까지 100년사 출판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기록보다 더 분명한 것은 믿음의 사람들로 이어져 온 섬김의 역사다. 40여 년 동안 묵묵히 장로직을 감당하시다 은퇴하신 원로장로님의 삶이 그 증거다.

 

필자 역시 장로피택 당시 감당하기 어려운 직분이라 여겨 사퇴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웃교회 장로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잘하는 집사보다 못하는 장로가 낫다.”

그 한마디는 장로직이 명예가 아니라 멍에이며, 동시에 은혜의 자리임을 깨닫게 했다.

 

올해로 23년째 우리 교회를 섬기시는 담임목사님은 마을 어르신들을 부모님처럼 돌보시고, 병원 진료에도 직접 동행하신다. 

 

교회 차량은 자연스럽게 마을 셔틀버스가 되었고, 좁은 시골길에서 농기계가 지나가면 먼저 양보하시는 모습에 주민들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아도 스스럼없이 “우리 목사님”이라 부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을 삶으로 보여주는 목회자의 모습 속에서 시골교회가 지역사회 속에 어떻게 뿌리내려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편 우리 지역 경안노회 소속 여러 교회는 지난해 산불의 큰 피해로 아직도 완전한 복구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교육관과 식당이 소실돼 예배당에서 컵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교회를 방문했을 때 마음이 무거웠다. 부활절을 앞둔 이때 하루속히 회복의 은혜가 임해 일상을 되찾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4월은 만물이 소생하는 달이다.

 

T. S. 엘리옷(Eliot)은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지만, 우리에게 4월은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는 생명의 계절이다.

 

중동과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쟁의 소식은 봄의 아름다움마저 아프게 한다. 이 봄에는 부디 전쟁의 포성이 멈추고 생명과 화해의 복음이 온 땅에 울려 퍼지기를 소망한다.

 

박목월의 시구처럼 돌아온 4월은 다시 생명의 등불을 밝힌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해마다 4월이 오면 이 시를 마음에 품는다.

 

온 산하가 연두빛으로 물드는 이 아름다운 계절에, 부활의 소망이 교회와 지역, 그리고 지구촌 위에 충만히 임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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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4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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