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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8.1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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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섭 대구한의대학교 미래라이프융합대학장

 

 

유럽 도시의 오래된 주택가를 걷다 보면 주택 입구의 인도 위에 박혀있는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반짝이는 동판을 볼 수 있다. 가로세로 10센티의 황동판 위에는 ‘이 집에 **년도에 태어난 000이 살았다. XX년에 체포되어 YY년에 아우슈비츠(예시)에서 살해되었다’라고 판금된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동판은 10센티 정도 길이의 작은 시멘트 벽돌 위에 붙어 있으며 주로 주택의 입구 아스팔트나 인도에 박혀있어서 누구라도 지나는 발밑에서 쉽게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동판이 붙어있는 시멘트벽돌을 독일어로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이라 부른다. 사전적 의미로는 ‘걸림돌’로 해석되나 내용적으로 보면 우리식의 ‘기억의 돌’ 정도로 번역해 볼 수 있다.

슈톨퍼슈타인은 독일의 예술가인 ‘군터 뎀니히(Gunter Demnich)’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1992년부터 독일 나치시대(1933~1945)에 희생을 당하거나 박해를 받았던 이들의 후손이나 이웃들의 증언 또는 기록을 근거로 그들이 살았던 주택들(Wohnraeume)을 찾는 일을 시작하였다. 1993년엔 슈톨퍼슈타인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으며, 1995년 쾰른에서 첫 번째 슈톨퍼슈타인을 설치하게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이 프로젝트는 독일 전역으로 퍼졌으며 2006년부터는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되어 현재는 유럽 28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부터 북쪽으로는 노르웨이 북부 도시들까지 망라하여 총 10만개 이상의 슈톨퍼슈타인이 유럽전역의 도시 주택가에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민간인에 의해 설치된 기념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의 산물인 것이다.

군터 뎀니히는 ‘한 인간의 잊혀짐은 그의 이름을 잊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라는 것을 모토로 나치시대의 고귀한 희생자들을 기억하고자 하였다.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이 유태인, 집시, 여호와의 증인, 유전병자, 호모섹스라는 이유로 나치의 희생물이 된 역사를 잊지 말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기억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이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 ‘흔적을 찾아서(Spuren Finden)’라는 협회를 중심으로 나치시대의 희생을 현재를 살고 있는 유럽인의 기억 속에서 다시금 되찾을 수 있도록 하는 일들을 실천하고 있다. 이 협회에는 무엇보다도 중·고등학생뿐만 아니라 청소년단체 등이 지원을 하고 있으며 일반 시민과 기관들도 함께하고 있다.

슈톨퍼슈타인은 매연이나 먼지 또는 비바람 등에 의해 녹이 슬고 부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매년 11월 9일 설치된 장소의 이웃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청소가 된다고 한다. 이날은 1938년 11월 9일에서 10일 사이 1천개가 넘는 유태인 회당(Synagoge)과 수천 개의 유태인 상점이 약탈을 당하고 파괴되었으며 400여명의 유태인이 희생을 당한 독일 역사에서 가장 암흑적인 날(Kristallnacht)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이날은 아우슈비츠수용소가 해방된 1945년 1월 27일과 더불어 가장 의미 있는 기념일이기도 하다.

잘못된 역사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순간 다시 반복될 수 있다. 일본은 일제강점기동안 우리민족의 재산을 수탈하고 수많은 희생자를 양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하면서 우리의 분노를 일으키는 일을 일삼고 있다. 그들 스스로가 지난 과오를 참회하고 기억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가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하면서 그들의 잘못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슈톨퍼슈타인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도 잊어버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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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톨퍼슈타인 - 흔적과 기억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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